2019년 1월 13일 18시, 대학로 JTN 아트 홀 1관. 루트비히: 이주광. 청년: 강찬. 마리: 김지유. 발터 외: 차성제. 피아니스트: 강수영. 리뷰를 쓰면서 여러 차례 말한 것 같지만, 나는 로맨스 요소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로맨스 요소가 없는 작품들을 편하게 봐 왔고 명확하게 로맨스가 있거나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 쳐도 굳이 그 쪽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점에서 이 극은 아주 편했다. 왜냐 하면 마리와 베토벤의 관계는 서로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발견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며 여기에는 사랑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한 명은 건축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녔고 또 한 명은 지금의 내가 매..
2018년 12월 29일 19시, 대학로 JTN 아트 홀 1관. 루트비히: 이주광. 청년: 김현진. 마리: 김려원. 발터 외: 차성제. 피아니스트: 강수영. 극을 보다 보면 흐르는가 여부와는 상관 없이 눈물이 터지는 지점이 있다. 를 볼 때는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넘버가 그랬다 (특히 공연 기간 후반에는 더더욱). 이 극의 경우는 마리의 첫 넘버가 지극히 개인적인 눈물 포인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사의 내용이 내가 실제 베토벤에게 진심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가 이 극에서 관객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는 감상이 최소한 나에게는 카를 파트 한정이 아니다. 사실 나는 어떤 창작물이 가지는 영향력을 논하는 장면에 약하다. 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이야기였고 는 ‘내 마음 ..
* 다른 극에서 본 적 있는 배우님은 뒤에 ‘*’ 표시를 했습니다. 2019년 1월 5일 15시, 대학로 예술 극장 대극장. 마리 퀴리: 김소향. 피에르 퀴리: 박영수. 루벤: 조풍래. 안느: 김히어라. * 조시: 김아영. 아멜리에: 이아름솔. 폴: 장민수. 밴드 마스터 - 서은지. 키보드 - 황선명. 드럼 - 황선용. 클라리넷 - 차민규. 첼로 - 유예림. 마리 역 배우님들의 노선이 전혀 다르다는 점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지난번의 마리가 정말로 자연 과학자로서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 날의 마리는 좀 더 인간적이었다. 감정 표현도 더 많았고 가진 것,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실존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근거로 한 극일 때는 그 인물의 인간적이고 상..
* 다른 극에서 본 적 있는 배우님은 뒤에 ‘*’ 표시를 했습니다. 2018년 12월 29일 15시,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 센터 소극장. 병사 1 - 란슬롯: 이석준. 병사 2 - 아서: 오종혁. 병사 3 - 가웨인: 김바다. 병사 4 - 그웬, 모르가나: 정연. * 이 공연 또한 ‘아가멤논’ 의 표를 구해 준 친구 덕에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보답 비슷한 것으로 그 친구의 티켓팅을 도와 주고 있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참 고마운 친구다. 여태 나랑 친구를 해 주고 있는 것부터가 그렇다. 또 샛길로 빠질 뻔 했으니 극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난번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었고, 이번에는 아서 왕 전설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시간 상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 - 맨 앞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이 언급된다 -..
그저께는 삼수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넘어갔는데 교정 검사 이야기를 한 번 해야겠다. 이건 정말 글로 써 놓을 필요가 있다. 분명히 고등학교 2학년 때 했던 거랑 똑같은 걸 또 하는 건데도 적응이 안 된다. 우선 입 안 모양대로 본을 뜬다. 이 때 쓰는 틀이 있는데 내 구강은 많이 작아 - 지난번 검사에서 거의 기형에 가까울 정도라는 소견이 나왔다 - 윗니 틀을 한 번 바꿔 끼워야 했다. ‘몰드’ 라고 하는 분홍색 반죽을 채워 넣어서 틀을 이에 끼우고 굳혔다가 떼는데, 이게 딸기 향이다. 분홍색일 때 알아봤어야 했다. 한참 지나도록 입에 딸기 향이 남아 있었다. 그 다음에는 혀가 깔깔하고 딸기 향이 남은 입 안 사진을 찍는다. 입 벌리는 데 쓰는 온갖 기구들을 양쪽에 넣고 입을 최대한 벌린 채..
* 다른 극에서 본 적 있는 배우님은 뒤에 ‘*’ 표시를 했습니다. 2018년 12월 13일 20시,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 센터 소극장. 병사 1 - 알베르트: 이석준. 병사 2 - 요한 외: 박은석. 병사 3 - 연락병 외: 김바다. 병사 4 - 크리스틴: 정연 (* 엠마 역). 이미 내 리뷰에 여러 차례 나온 친한 친구가 재작년 이맘때 정도부터 이야기 하던 극이다. 1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데 자세한 건 다 스포일러라 말 못 하겠지만 정말 대단한 이야기니까 꼭 봤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언젠가 한 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표를 구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이번에 친구가 현매를 해 주어서 3부작 중 시간 상 두 번째인 이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극은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
* 다른 극에서 본 적 있는 배우님은 뒤에 ‘*’ 표시를 했습니다. 2018년 12월 28일 20시, 대학로 예술 극장 대극장. 마리 퀴리: 임강희. 피에르 퀴리: 박영수. 루벤: 조풍래. 안느: 김히어라 (* 어린 하녀 역). 조시: 김아영. 폴: 장민수. 아멜리에: 이아름솔. 밴드 마스터 - 서은지. 키보드 - 황선명. 드럼 - 황성용. 클라리넷 - 정현철. 첼로 - 유예림. 우선 자리 이야기부터 하겠다. 내가 소극장 위주로 다녀서 그런 것일 텐데, 뒷자리를 잡은 게 문제가 아닐 정도로 무대와 객석이 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가까웠고 배우님들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대략 알 수는 있어 다행이었지만. 캐릭터 구성은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 진리를 추구하는 자 (마리) 와 진실을 추구하는 자 (안느..
2018년 12월 23일 14시, 대학로 JTN 아트 홀 1관. 루트비히: 이주광. 청년: 박준휘. 마리: 김지유. 발터 외: 함희수. 피아니스트: 강수영. * 원래는 16일 밤 공연을 (지난번의 지연 보상으로) 예약해 뒀다. 그런데 이틀 전에 갑자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문자를 보내서 취소해야 했다. 실제 베토벤의 생일도 챙기고 싶고 다른 배우님의 마리도 보고 싶고 해서 시험 전 주고 뭐고 꼭 갈 생각이었는데... 게다가 이제는 장년 루트비히 역 배우님을 고정한 채로 그 다른 배우님의 마리 슈라더를 볼 수가 없다... 그저 눈물이 난다. 지난번까지 본 것과 많이 다른 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마리의 감정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슬픔과 화가 흘러 넘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청년 루트비히도 그랬다. 일..
학교 곳곳에 대자보가 붙고 포스트 잇이 붙었다. 내 것도 두 개 붙어 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요 - #MeToo #WithYou’ ‘#MeToo #WithYou - 우리는 꽃이 아니다, 우리는 불꽃이다’ 포스트 잇을 쓰면서 새삼 느꼈지만 내 글씨는 정말 묘하다. 흔히 말하는 악필까지는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펜 촉과 종이가 떨어지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는 한다. 그래서 획 수가 진짜 적다. 운 좋으면 한 글자를 두세 획으로 끝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흘림체인 건 또 아니어서 의외로 알아보기는 쉽다. 나름 정자에 가까운 흘림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언제부턴가 글씨 잘 쓴다는 말도 가끔 들었다. 그런데 그 앞에 ‘왼손잡이 치고’ 라고 하면..
대문을 나서면서 제르베즈는 흥건히 고인 물 구덩이를 뛰어 넘어야 했다. 염색장에서 흘러 나온 물이었다. 그 날 여름 밤 하늘의 깊은 쪽빛 그대로인 물 속에는 관리인 거처에 달린 작은 야등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에밀 졸라, 1권. 펭귄 클래식 판 전체에서 내 기준으로 가장 예쁜 문장을 가져왔다. 이 작품은 절대 이런 분위기가 아니다. 내가 에밀 졸라 작품은 이것 하나 밖에 안 읽었으므로 할 말이 별로 없긴 한데 그는 정말 글을 잘 쓴다. 사람이 열댓 명씩 모여서 한나절 내내 같이 있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게다가 그 한나절이 각각 50페이지 정도 되는 한 챕터인데)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두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또 공간 묘사가 그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