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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나서면서 제르베즈는 흥건히 고인 물 구덩이를 뛰어 넘어야 했다. 염색장에서 흘러 나온 물이었다. 그 날 여름 밤 하늘의 깊은 쪽빛 그대로인 물 속에는 관리인 거처에 달린 작은 야등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에밀 졸라, <목로주점> 1권.
펭귄 클래식 판 <목로주점> 전체에서 내 기준으로 가장 예쁜 문장을 가져왔다. 이 작품은 절대 이런 분위기가 아니다. 내가 에밀 졸라 작품은 이것 하나 밖에 안 읽었으므로 할 말이 별로 없긴 한데 그는 정말 글을 잘 쓴다. 사람이 열댓 명씩 모여서 한나절 내내 같이 있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게다가 그 한나절이 각각 50페이지 정도 되는 한 챕터인데)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두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또 공간 묘사가 그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정말 엄청나게 생생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19세기 중반의 파리일 것만 같다. 무시무시할 정도다.
2018년 3월 5일,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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