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만 골라 죽이는 여성 연쇄 살인범과 천재 여성 형사의 대결 구도가 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들이 좀 부러워졌다. ‘그런 거에서?’ 싶겠지만 지금 나는 진지하다. 범죄나 범죄 수사를 다루는 작품들에서 피해자의 존재와 고통은 지워지게 마련이다. 언제나 범죄자와 형사, 그리고 그들의 대결만이 조명된다. 피해자의 고통이 등장하더라도 대체로 그가 사적 제재를 택하게 하는 하나의 동기가 될 따름이다. 내가 그런 이야기에서 쾌감을 느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나와 학교 폭력 생존자인 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 부끄럽게도 얼마 안 된 일이지만 - 폭력을 다루는 작품들이 조금 불편..
요 몇 달 들어 남이 쓴 글을 읽을 때면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좋은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 기쁘고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맛이 쫄깃하다 (묘사가 좋다 싶으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나 자신이다. 나는 잘 짜인 것들 - 만듦새가 좋은 이야기나 음악이라든가 뭐 그런 거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글이 좋은 동시에 내가 쓰는 글에는 절대 영향이 없기를 바라게 된다. 어떤 글을 읽었든 상관 없이 내 글이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내 것으로 남았으면 좋겠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말하자면...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나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겠다. 일단은 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담 심리사를 지망하는 심리학도이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만약에 그..
(초판) - 지금은 비공개로 돌려 놨다. 실제 인쇄된 것을 보고서야 내가 어마어마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는 이 글의 초점 되시는 ‘청년’ 에 대한 긴 묘사 두 번에 그 출처를 주석으로 달아 놨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게 스포일러였다. 이 글 초반의 포인트는 읽는 사람이 전문의 30퍼센트 가까이 읽어서야 ‘청년’ 의 정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너무 심하게 유명해서이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올릴 때는 그것을 포함해 각주 몇 개를 후기 뒤로 보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런 걸 인쇄까지 할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의 글이기는 하다. 문장 호흡은 끝날 듯 안 끝나 죽죽 늘어지고 묘사는 도대체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말 과하며 주석을 논문 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