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쓴 사람 (루나) 의 자캐들이 등장하지만 뮤지컬 의 작중 설정을 아주 살짝 가져다 썼습니다. ...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드는 것은 아마도 꿈 꾸는 것, 아아, 바로 그것이 문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중. 그는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는 죽음을 생각하느니 점심 식사를 하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나았다. 아니면 저녁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느냐 마느냐, 마신다면 무엇으로 하느냐 같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라든가. 언제부턴가 잠과 꿈과 죽음 사이의 어떤 유사점이 느껴지면서 아지랑이처럼 두려움이 피어 오르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에 불과했다. 말이 나왔으니 그가 잠결에 보았던 꿈들 의 수를 모두 헤아려 표로 만든다 치자. 그러면 그리 많지 않다가 30..
찬장과 지갑이 동시에 비는 것 만큼 난감한 일도 또 없다. 그것은 위장이 비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난감한 일이 끔찍한 일의 전조라고 하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찬장과 지갑이 비는 것은 물리적으로 나와 무관한 일이지만 위장이 비는 것은 나 자신의 일부가 비는 일이니까. 혼자 살게 된 지 어느덧 1년, 지금의 유니스 도메니카 크로체타가 바로 이런 상태였다. 대학생이 많이 찾아오는 큰 카페는 시험 기간만 되면 미칠 듯이 바빠졌고 고용주라는 인간은 며칠 동안 초과 노동을 시킨 주제에 임금도 안 주고 버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유니스는 퇴근하는 길에 식료품점을 들를 시간도 돈도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금의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오블리비아테’ 를 써서 임금을 두 번 받아 버리고 싶을 정도였..
* 이 글은 역사 기반 2차 창작입니다.* 세부 사항과 결론은 거의 사실에 가깝지만 이 글의 내용이 정확한 사실일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과제를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잘 알려지지 않아서 과제에 쓸 만한 내용도 아니겠지만요. * BGM 추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ATOS Trio: Beethoven Piano Trio op. 1 no. 3 in c-minor - live. (https://m.youtube.com/watch?v=X91udLL_iNk) * der Anfang: 독일어로 ‘시작’ 이라는 의미입니다. 제 2의 누군가가 아니라 제 1의 내가 되세요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 뮤지컬 중 ‘당신의 얘기를 들려 줘요’. 바람이 부는 소리조차 청년에게는 ..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야.” * 기본 설정. 이름: 카스파르 다비트 베레트 (Caspar David Berett). - 사적인 자리에서는 ‘다비트’ 보다는 ‘카스파르’ 라고 불러 주는 걸 좋아한다. 생년월일: 1910년 1월 18일. 젠더/성적 지향: 시스젠더 (법적 성별 남성), 그레이로맨틱 에이섹슈얼. - 자신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으며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음을 깨달은 계기는 학교 다닐 때 동급생들이 돌려 보던 야한 그림들과 사진들을 봤는데 정말 아무 느낌도 안 들어서이다 (오히려 약간 불쾌했다고 한다). 어땠냐는 친구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더니 친구가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정체화를 하지는 못한다. 평생 자신이 그냥 독신주의자라 생각하면서 섹스에 관심이 없는 건 그냥 그런..
- 이 글에는 가정 폭력 및 학대와 관련된 언급이 있습니다. “나는 건반을 사랑합니다. 그 위에서만은 내 손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본 설정. 이름: 로렌츠 파울 에브너 (Lorenz Paul Ebner). - 공식 문서에 서명을 할 때도 ‘파울’ 은 절대 쓰지 않는다. 또 혹시라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에게는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기세로 화를 낸다. 애초에 통성명을 할 때부터 ‘그냥 로렌츠라고 부르십시오’ 라고 하기 때문에 알 길은 없지만. 생년월일: 1788년 2월 26일. 젠더/성적 지향: 시스젠더 (법적 성별 남성), 헤테로로맨틱 데미섹슈얼. - 어쩌면 ‘사랑’ 이라는 감정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어: 오스트리아 독일어 (모국어), 이탈리아어 (어색하지는 않음). - ..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듯이 내일의 나 또한 그러하기를.” * 기본 설정. 이름: 유니스 도메니카 크로체타 (Eunice Domenica Crocetta). - ‘유니스’ 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미들네임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많이 불편해 한다. 예외적으로 오빠가 미들네임으로 부르는 건 괜찮다고 한다. 생년월일: 1936년 12월 16일. 젠더 및 성적 지향: 시스젠더 (법적 성별 여성), 그레이로맨틱 그레이섹슈얼. - 본인은 평생 정체화하지 못하지만 어떤 글이나 이론을 처음 접할 때와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의 마음이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언어: 영국식 영어 (모국어), 프랑스어 (크게 어색하지는 않음), 독일어 (독해 위주). - 영국식 영어 중에서도 에스추어리를 사용한다...
달은 물론이거니와 별도 하나 안 보이는 새까만 밤이었다. 그러나 서재 안에는 촛불이 밝았다. 40대 중반 가량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이지 서로 달랐다. 한 사람은 창 밖의 어둠과 분간이 안 되는 색인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활자 새겨진 종이를 향해 고정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의 금빛 머리카락은 촛불 빛에 더 환하게 빛났다. 잠시 쉬는 중인지 그의 파란색 눈동자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턱수염 역시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 사람은 ‘웅장하다’ 라는 말의 뜻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덥수룩했지만 다른 사람은 차분하고 단정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토록 정반대인 두 사람이 같은 주제에 이렇게나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
* 케이네스 박사님의 전자 부친이자 저의 절친한 트친님이며 이 시대의 참된 과학도인 로노님 (@RN_virtu) 께 이 글을 바칩니다. 여태 타임라인에 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960년대 중반의 런던 한복판에는 다 쓰러져 가는 2층 건물이 하나 있었다. 하도 낡은 데다 먼지와 물때에 절어 있어 어느 누구도 그 건물이 누구 것인지 뭐 하는 곳인지 관심을 가질 생각조차 안 했다. 실은 이 곳이 출판사라고 귀띔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랬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 출판사는 이제 막 문을 열었고 직원이라고 해 봤자 사장과 편집장, 두 사람 뿐이었다. 사장은 성이 ‘파이퍼 (Piper)’ 였지만 파이프 담배는 커녕 그냥 담배도 한 번 건드려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
유니스 도메니카 크로체타의 평소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지는 어느 정도 그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염색 한 번 안 하고도 비현실적이리 만치 붉었고 뭔가를 잡고 들고 밀고 당기는 것 이상의 세세한 조절이 필요한 모든 일들에 왼손을 써 왔다. 그렇다. 그는 확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프랑스 대혁명이 한창이던 때 붉은 프리기아 모자와 자코뱅 파 의원들의 자리에서부터 생긴 제법 된 고정 관념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는 지극히 차분하며 착 가라앉아 있는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친구든 연인이든 애인이든 누군가와 깊이 어울리는 일도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인지 여가라고 해도 책을 읽고 어쩌다 글을 끼적이는 정도가 전부였다. 요리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끼니를 챙기는 이상의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