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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는 삼수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넘어갔는데 교정 검사 이야기를 한 번 해야겠다. 이건 정말 글로 써 놓을 필요가 있다. 분명히 고등학교 2학년 때 했던 거랑 똑같은 걸 또 하는 건데도 적응이 안 된다.
우선 입 안 모양대로 본을 뜬다. 이 때 쓰는 틀이 있는데 내 구강은 많이 작아 - 지난번 검사에서 거의 기형에 가까울 정도라는 소견이 나왔다 - 윗니 틀을 한 번 바꿔 끼워야 했다. ‘몰드’ 라고 하는 분홍색 반죽을 채워 넣어서 틀을 이에 끼우고 굳혔다가 떼는데, 이게 딸기 향이다. 분홍색일 때 알아봤어야 했다. 한참 지나도록 입에 딸기 향이 남아 있었다.
그 다음에는 혀가 깔깔하고 딸기 향이 남은 입 안 사진을 찍는다. 입 벌리는 데 쓰는 온갖 기구들을 양쪽에 넣고 입을 최대한 벌린 채 - 구강이 작아서 그런지 입술도 작아 한계가 있다 - 이를 다물었다 벌렸다 하며 사진을 찍는다. 힘을 빼는 게 참 쉽지 않다. 얼굴 사진도 찍는다. 아예 촬영실이 따로 있다. 이 쪽 보시라고 참 친절하게도 스티커가 여럿 붙어 있었다. 허리 펴는 건 몰라도 힘 빼는 게 진짜 너무 어려웠다. 나만 그런 걸까? 다들 그렇지 않을까?
이제 치과 안에서 할 건 다 끝났지만 영상 의학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 여기서는 힘을 뺄 필요가 없다. 대신 움직이면 안 된다. 사실 진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매우 뻔하다. 분명히 교정을 해야 할 것이고 그 뒤에는 치과 치료용 양악 수술을 해야 한다. 그건 나중 일이고 중요한 것은 아침을 걸러서 배가 무척 고팠다는 거다. 입 안에 뭐가 잔뜩 들어갔다 나왔다 하느라 입맛 걱정을 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결국 동네 조그만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점심을 먹었다. 먹고 나서도 딸기 향이 그대로라 좀 그렇긴 했지만.
수술 없이 턱을 교정할 수 있는 치과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지난번에 했던 바로 그 방법대로 엑스레이를 두 장 찍었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내 경우는 정말로 양악 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단다. 위턱이 아래턱에 비해 너무 작아서다. 윗입술 양 옆이 팔자 주름처럼 움푹 꺼져 있는 게 그 때문이라고 한다 (난 오랫동안 그게 주름인 줄 알았다). 게다가 아래 송곳니가 없기 때문에 아래턱이 ‘그나마’ 덜 자란 거라나 뭐라나.
이래서 치과 가는 게 참 싫다 - 치과만 갔다 오면 이런 식으로 검사 받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투덜대느라 일기가 길어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내 구강의 근본적인 글러 먹음을 알려 주는 사람만 바꿔 가며 계속 듣는 게 어떻게 좋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치료를 받으려면 우선 진단을 받아야 하고 진단을 받으려면 우선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을 굳히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방법이 정말로 하나밖에 없다는 데 어쩌겠어?
그래도 오늘 외출은 괜찮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새로 연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마시며 저녁으로 불고기 파니니를 먹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에 말한 그 망고 맛 맥주를 캔으로 파는 것도 봤다. 씹는 게 영 불편하기는 해도 먹는 건 참 즐겁다. 내가 정말 이렇게나 단순한 인간이다.
2018년 1월 26일, 2018년 2월 26일,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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