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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극에서 본 적 있는 배우님은 뒤에 ‘*’ 표시를 했습니다.
2019년 8월 24일 19시, TOM 1관.
김우진: 정동화 (*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역).
윤심덕: 정연. *
사내: 김재범.
이 극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뮤지컬을 보다 보면 그나마 즐거운 넘버들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 상황을 즐거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이 든다. 이 극의 경우는 ‘도쿄 찬가’ 넘버가 그렇다. 윤심덕이 양산을 쓰고 나와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게는 그 가사가 진심이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자니 실로 안타깝다.
사실 이 극 자체가 이러한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통상적으로 언급하는 자체가 터부시 되고는 하는 죽음을 오히려 찬미하여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나는 이 극이 무척 복잡하다고 느꼈다. 나의 감상 방식이 그 복잡함을 잘 이해할 수 있는지와 별개로 일단 그렇게 느꼈다.
이 날은 자리가 지난번 자리보다 살짝 앞이고 벽에 상당히 가까웠는데, 그래서인지 발과 의자와 공기로 전해져 오는 라이브 연주의 진동이 정말 엄청났다. 가뜩이나 강렬한 곡들인데 이렇게 자극이 강하다 보니 몰입이 너무 잘 돼서 내가 지금 말 그대로 관부연락선에 탄 건가 싶을 정도였다.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까지 몰입하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뮤지컬 넘버인데도 이 정도라면 그냥 연주곡으로는 더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날의 세 사람은 1921년에 정말 많이 즐거웠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사내가 정말 친구 같은 존재여서 그런 듯 하다. 어쩌면 이 사내는 김우진과 윤심덕을 자기 대본 속 인물 이상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내가 좀 많이 눈에 밟혔다. 지난번에도 그렇기는 했지만 그 때는 시대상이 한 인간의 형태를 한 관념이라는 느낌 때문에 흥미가 생겨서 그랬던 거라 정말 색달랐다.
- 두 번 보고 나니 이 극은 정말 좀 간격을 둬 가며 봐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음악의 강렬함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나의 만족감을 위해 웬만하면 그렇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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