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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조선에서 태어난 기생, 의술을 익히고 춤을 배운 궁중 무희. (중략) 아무리 불어를 잘 해도 그네들의 사상과 시문에 깊이 동감해도 나는 프랑스인이 될 수 없지. 나는 누구인가, 정녕 누구란 말인가. 내 영혼의 얼굴은 조선인일까, 프랑스인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괴물일까.
- 김탁환,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2권.
이 책은 다 읽었지만 2권만 샀다. 나머지는 앞으로도 살 생각이 없다. 우선 리심이 1인칭 화자로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외국 생활을 하는 2권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조선에서는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3권의 내용이 읽는 내 입장에서도 그토록 괴로웠겠지.
요즘의 경향으로는 이 책에서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을 느끼고 불편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느낀 점이 좀 다르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간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 - 도쿄, 파리, 탕헤르 - 를 접하고 그것들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자 노력한 끝에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름의 결론까지 내리는 -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조선이고 조선 또한 아시아의 모로코이다’ - 모든 과정을 1인칭 증언으로 매우 가깝게 서술한 기록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2018년 1월 6일,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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