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

김보영, <마지막 늑대>, 창작과비평 (청소년 SF 단편집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수록)

루나 in Learning 2018. 12. 22. 11:41

그는 밤이 오면 달빛이 은은하게 거리를 비춘다는 것을 모른다. 하늘 가득 별이 빛나고 그 별이 하루에 한 번씩 천구를 운행한다는 사실 또한 모른다. 달의 모양이 주기적으로 차고 이지러지며 오늘과 같은 보름 밤에는 그 창백한 빛에 거리가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을 모른다. 그에게 밤이란 단지 소리가 가라앉는 시간이며 습기가 차고 기온이 낮아지는 시간이며 공기가 무거워지는 시간이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집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의 집 벽 가득 그림을 그렸으며 붉은 노을과 짙푸른 밤하늘을 그려 놓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단지 냄새를 묻히며 영역 표시를 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내가 현관 문에 그의 초상을 그렸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몸이 비취 빛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눈동자 또한 그렇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그의 하늘에는 다른 것이 떠 있을지. 그들의 귀에는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리며 별들이 공명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고 있을지, 지구의 자기장이 흐름을 바꾸는 소리가 들리며 우주선과 자외선이 지표로 쏟아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을지, 인류가 수만 년의 역사 동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을지. 그가 보는 내 모습은 거울에서 보는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른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의 귀에는 내가 듣지 못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고 있을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슬픔에 젖는다는 것을 그는 또 어떻게 알 것인가. 우리가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고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하건만. 그와 내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차원에 걸쳐져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을.

- 김보영, <마지막 늑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문학적인 하나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의 문장이 훅 들어오는 문장이었다면 <마지막 늑대> 의 문장은 곱씹을수록 그 맛이 진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글이 많은데 굳이 내가 또 글을 써야 할까? 아무래도 답은 아니오에 가까워 보인다. 남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2018년 4월 8일,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