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스테이션 일레븐>, 북로드 (한정아 옮김)

루나 in Learning 2018. 12. 22. 11:37

악단의 마차 세 대 모두 양면에 흰색 페인트로 유랑 악단이라고 적혀 있는데, 선두 마차에는 한 줄이 더 적혀 있다.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9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유랑 악단은 공항을 떠났다. 5주 간 공항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마차를 수리하고 저녁마다 셰익스피어 극을 공연하거나 연주회를 열던 유랑 악단이 떠난 뒤에도 음악과 연극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 날 오후 가렛은 밭에서 바닥을 쓸면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흥얼거렸고 돌로레스는 중앙 홀 바닥을 쓸면서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조렸으며 어린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칼 싸움을 했다.

-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스테이션 일레븐>.

 

사실 아서 파트와 지반 파트는 특별한 인상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아서 파트는 재미가 없었다). 클라크와 공항 파트가 좀 재미있긴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독감 이후를 다루는 커스틴과 유랑 악단 파트가 너무 강렬했다. 그래서 인용문도 죄다 그 쪽 이야기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데가 있지만 정말 예쁘기는 했다. 유랑 악단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음악과 연극이 모두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둘 다 어떤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감상자에게 여운을 남기니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을 다루며 살았고 그렇기에 나에게도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2018년 4월 22일,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