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2018년 10월 6일 15시, 대학로 가나의 집 열림 홀.
폴: 유승현.
왓슨: 이현진.
니콜라이: 김대현.
루시: 박란주.
기욤: 오경주.
- 게스트 도우미는 홍승안 배우님.
이 극의 시놉시스 첫 줄을 보았을 때 나는 도전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거 해리성 정체감 장애잖아? 이 얘기를 한다고? 그래... <인터뷰> 보다는 낫겠지... 너무 너무 올리고 싶어서 텀블벅 후원까지 받아 가며 자체 제작을 했다는데... 이런 생각으로 예매를 했다.
우선 이 소재와 관련된 클리셰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우선 폴과 다른 인격들이 서로를 소중한 친구로 아끼고 또 함께 사는 집을 지키려 노력한다. 다른 작품에서 인격들이 몸과 기억을 두고 싸움을 벌이거나 (여러 영화들) 대놓고 그러지는 않아도 일단 서로를 꽤 불쾌하게 여기는 (<인터뷰> 의 경우) 것을 떠올리면 정말 신선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쁘지 않네’ 라는 생각은 했다. 게다가 <인터뷰> 에서는 인격 다섯 명을 배우 한 사람이 모두 연기하는데, 여기서는 배우 네 사람이 각각 한 인격을 맡는다. 그래서 싱클레어 역 배우님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대단했던 건지 이걸 보면서 다시 느꼈다.
마지막의 대사들로 어느 캐릭터가 어느 감정에서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대략 따져 보면 루시는 공포이고 니콜라이는 고독함이며 기욤은 분노이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대형 스포일러) 로 인해 폴의 존재 자체가 대단히 애매해지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난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왓슨이 정신 의학자 정도의 포지션인가 했었다 (<라흐마니노프> 와 <인터뷰> 의 (대형 스포일러) 가 남긴 것). 왓슨의 넘버를 듣고 나서 그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어느 제대로 된 치료자가 자기 내담자 또는 환자를 두고 ‘미친 놈, 또라이, 정신병자’ 운운 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인데 하물며 그걸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하다못해 중간에 크게 잘못을 하나 한 니콜라이 달 박사도 그러지는 않았단 말이다...
또 목소리로만 나오는데도 폴의 엄마가 나오는 장면은 상당히 힘들었다. 이 극이 본 공연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 거라면 제발 이 두 가지는 좀 어떻게 고쳐 줬으면 좋겠다.
-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데, 폴과 루시가 너무 사랑스럽다. 루시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되고 싶은 거 다 되어야 하며 폴은 두툼하고 푹신한 이불로 둘둘 말아 놓고 맛있는 거 잔뜩 먹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