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 단상 (9) 마스크와 목소리
애초에 외출이라는 것을 한 번 하기도 참 힘들지만 마스크가 외출 필수품이 되어 버린 시기이다. 그래서 제대로 착용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스크를 낀 채로 노래를 몇 소절 정도 소리 내 불러 보게 된다. 아니면 손을 씻을 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지금까지 불러 본 것들로는 속으로 ‘인터내셔널 가’ 1절 (이 곡은 특히 손 씻기에 좋다) 이라든가 <미드나잇> 의 ‘그 날이 찾아왔어’, <명동로망스> 의 ‘생명수’, <사의 찬미> 의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등이 있다. 원래 머리에 남는 넘버들은 가끔 어설프게 불러 보기도 하는데 뮤지컬을 보고 다닌 덕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인데 목소리는 정말 대단한 악기이다. 관악기일 수도 있고 현악기일 수도 있고 타악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목구멍이라는 통로에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기 때문에 관악기이다. 그리고 그 공기로 성대라는 근육을 문지르거나 두드리기 때문에 현악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공기로 인한 진동이 성대만이 아니라 두개골 등 얼굴에 있는 여러 가지 부위들도 같이 두드리기 때문에 타악기이기도 하다.
자세한 경위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나는 목소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관극에 취미를 들이게 되었고 잘 다듬어진 목소리를 들을 일이 많아졌다. 다른 것을 모두 미뤄 두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을 즐길 방법이 늘었다는 점에서라도 꽤 괜찮은 변화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덤 - 위에 언급한 곡들에서 내가 부르는 부분의 가사를 소개하겠다.
‘인터내셔널 가’ 1절
깨어라 노동자의 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 온다
대지의 저주 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 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미드나잇> ‘그 날이 찾아왔어’
온 세상 빛이 힘을 잃은 밤
모든 사람 두려움에 숨을 때
권력자와 가진 자의 검은 그림자
밝은 아침 해를 가려 버렸지
<명동로망스> ‘생명수’
마음이 아파서 심장이 멈출 것 같을 때
이 생명수로 수혈을 하고
아침에 눈 뜨는 게 벅차도록 힘겨울 때
이 생명수가 날 숨 쉬게 하네
<사의 찬미>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그 어디로도 갈 곳 없어
창공은 넓고 저 바다 끝 없어
찢겨진 날개 펼치지 못해 갈 수가 없어
2020년 3월 1일,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