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 단상 (7) 넘버 취향 이야기
적당히 잘 보이기만 하면 무대에서 먼 자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런지 관극의 만족도가 ‘들리는 것들’ 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연극을 볼 때면 대사 자체와 거기 실리는 반 (semi) 언어적 요소들에 신경을 쓰게 되고 뮤지컬을 볼 때면 거기에 더해서 넘버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사보다는 넘버가 청각적으로 더 풍부한 경험이다 보니 (언어와 음악이 둘 다 있으므로 뇌의 양 반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은가) 텍스트 자체의 재미는 연극이 더 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넘버를 잃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텍스트가 좋은 뮤지컬이 많으면 내가 많이 기쁠 텐데 이게 또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간단히 시작하자. 곡이 노래 같으려면 확실하게 노래처럼 들려야 하고 연주곡 같으려면 확실하게 연주곡처럼 들려야 한다. 전자라면 가사를 더 따지게 되고 후자라면 박자와 음을 더 따지게 된다. 노래로서도 연주곡으로서도 좋다면 그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미드나잇> 이 생각 난다. <라흐마니노프> 나 <사의 찬미> 처럼 곡에 유명한 원작이 있는 극을 드는 건 좀 양심 없는 짓이고) 그건 어려운 일이니 어느 한 쪽을 확실히 잘 해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또 음악 극 장르에서 곡을 크게 분류하는 기준인 ‘아리아’ 와 ‘레치타티보’ 중에는 후자에 가까운 곡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극을 ‘내 눈 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소설’ 쯤으로 생각하고 봐서 그런 것 같다. 라이브 연주인 경우에는 현악기 편성을 더 좋아한다 - 활로 긋는 소리, 손가락을 놀려 뜯는 소리, 두들기는 소리. 귀를 간질이는 그 묘한 기분이 참 좋다. 가사의 경우는 한 행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의 음수율이 잘 맞는 가사를 특히 좋아한다. 나중에 옮겨 적어 볼 때 그게 보이면 괜히 실실 웃으며 즐거워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런 게 보이면 느껴지는 쾌감 비슷한 것이 확실히 있다.
그리고 내 넘버 취향에서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소극장 작품들의 중창 또는 단체 넘버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한다는 점이다 (대극장 앙상블 넘버는, 음, 본 게 별로 없다 보니 잘 모르겠다). <시데레우스> 와 <사의 찬미> 의 3중창 넘버들을 모두 좋아하고 <명동로망스> 나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의 잊을 만 하면 쏟아지는 단체 넘버들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넘버들은 현장성이 생각보다 많이 중요한 것 같다. OST 를 열심히 들어도 극장에서 보던 그 느낌이 살지를 않는다. 그래서 다음 시즌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엉엉 울게 되는 것이다...
2020년 1월 3일, 루나.